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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Life 2026. 7. 14. 15:18
내 게시물은 주로 티스토리에 올리고 있지만, 사실 네이버 블로그로 여러 투자자들을 이웃 추가해 두고 올라오는 글들을 하나하나 챙겨 읽고 있다. 처음에는 주식 관련 도서를 쓴 저자들을 팔로우하다가, 점점 블로그 생태계 숨은 재야의 고수들을 하나둘 발견하게 되면서 구독 목록이 꽤나 풍성해졌다.
그들의 투자 프레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나 책, 음악 등 취향까지 접하게 된다. 나는 고수들의 지혜를 닮고 싶은 마음에 그들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찾아보거나 듣곤 한다. 사이토 다카시의 《일류의 조건》에서 강조한 '모방의 힘'을 인생의 중요한 지론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주식하는하루키' 님을 새로 팔로우했다. 친누나 또래로 보이는 데다 자산운용업에 종사하시는 분 같았다. 닉네임에서 알 수 있듯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실 것 같았지만, 사실 나는 하루키 소설과 거리가 먼 편이다. 군 복무 시절 선임의 추천으로 읽었던 《상실의 시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 블로거분의 취향을 모방하기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분이 책 《행복의 기원》과 영화 <500일의 썸머>에 대한 글을 남기신 것을 보았다. 《행복의 기원》은 내가 평소 즐겨 읽는 심리학 분야의 책이라 반가운 마음에 바로 '밀리의 서재'를 검색했다. 마침 서비스 중이어서 하루 만에 단숨에 읽어내렸고, 마음에 남은 여운을 곱씹다 조금 늦은 기록을 남겨본다. (참고로 <500일의 썸머>는 줄거리만 보고 눈물 쏙 빼는 로맨스물인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유쾌하면서도 인간관계와 인생에 깊은 화두를 던지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후기는 조만간 따로 자세히 남겨볼 예정이다.)
흥미롭게도 《행복의 기원》의 저자인 서은국 교수님은 나와 제법 가까운 간접적 인연이 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내게 첫 심리학 교양 수업이었던
(그리고 내게 유일하게 낙제점을 안겨주며 내 '정신건강'을 앗아간)'현대사회와정신건강'의 담당 교수님께서 서은국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해주셨다. 이후로도 여러 심리학 수업에서 교수님의 이론이 단골로 인용되었고, 도서관에서 직접 강연을 하시는 모습도 뵈었다. 아무래도 자교 교수님이시다 보니 마음속으로는 친숙한 분이다.
행복에 대한 나의 지론은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운 에피쿠로스 학파의 '아타락시아(Ataraxia)'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단순히 쾌락주의라 하여 자극적이고 육체적인 감각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을 절제하고 마음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자체를 최고의 쾌락으로 보는 입장이다. 헛된 욕망을 소멸시켜 마음의 완전한 평화를 얻는다는 점에서 불교의 열반과도 궤를 같이한다.
우리는 흔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이를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고 마음의 수양을 쌓아야 한다고 믿는다. 나 역시 아타락시아를 추구하며 마음의 평정을 얻는 것이 행복에 다가가는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서은국 교수님의 관점은 냉철하고도 명쾌하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존재다.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행복은 인생의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해 뇌가 분비하는 내적 시그널이자 도구에 불과하다. 음식을 먹을 때, 이성과 함께할 때 행복감을 느껴야 생존할 수 있었기에 우리 조상들의 뇌에 그 시스템이 각인되었다는 설명이다. 행복이란 정신적 수양의 결과라기보다는 극히 생물학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인 셈이다.
그렇다면 욕망을 절제하고 마음의 고요를 추구하는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와, 생존을 위한 쾌감의 도구로 행복을 바라보는 서은국 교수님의 '진화론적 행복'은 완전한 대척점에 있는 걸까? 아니다. 두 사상은 놀랍도록 같은 결론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다.
우리의 뇌는 '적응'이라는 잔인할 정도로 뛰어난 생존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주식 시장에서 아무리 짜릿한 텐배거를 거머쥐어도, 그 쾌감은 생존을 위해 이내 소멸하고 감정의 기본값으로 리셋된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강한 자극을 찾아 헤매게 된다.
에피쿠로스 학파가 말한 아타락시아 역시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들이 쾌락을 추구하되 욕망의 절제를 강조한 이유는, 거창하고 강한 자극을 좇는 삶이 필연적으로 고통과 불안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오랜 시간 추구해 온 아타락시아의 평온함과, 교수님이 진화심리학으로 증명해 낸 행복의 기원은 하나의 진리로 통한다.
행복은 인생의 마침표처럼 한 번에 도달해야 할 거창한 깨달음이나 한 방의 대박이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탐욕과 불안을 내려놓은 평온한 상태를 바탕으로, 그 안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쾌감을 자주 느끼는 것이 진짜 행복이다. 거창하고 강렬한 행복의 강도를 좇느라 현재를 저당 잡히고 싶지 않다. 아타락시아의 마음을 바탕으로, 내 일상에 존재하는 소소한 행복의 빈도를 늘려가는 것. 그것이 훨씬 현명한 투자법일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글을 남길 때마다 그날의 내 기분을 대변하는 음악, 혹은 요즘 즐겨 듣는 노래를 한 곡씩 남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 말이 그 말이겠지만.)
요즘 나의 일상을 채우는 음악은 밴드 쏜애플의 미니 3집 《나의 세기》다. 흔히 밴드 음악을 들을 때 기타 리프나 베이스 라인, 보컬의 음색 등 각자 집중해서 듣는 포인트가 다르기 마련인데, 내 경우엔 '드럼 사운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앨범은 드럼의 필인이 굉장히 폭력적(?)이라서 마음에 쏙 든다. 심장을 때리는 압도적인 타격감 덕분에 내 기준에서는 5점 만점에 5점을 주고 싶은 수작이다.
이번 앨범 수록곡 중에서도 유독 귀에 꽂히는 음악은 <아카시아>. 이 강렬한 사운드를 꼭 한번 들어보시도록.
https://www.youtube.com/watch?v=tv7k_bFwjTA